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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19 에그베이컨
- 2007.07.01 과사무실, 식민지근대화론, 정치경제학과 구조주의, 홈에버, 생신
- 2007.03.17 친구
- 2007.01.01 2007.1.1.
- 2006.12.07 일본학회 참관 후기
- 2006.10.15 한 번만 더
- 2006.08.17 구미 일대 서원답사 여행 .... 후기
- 2005.10.03 2005.10.2.수
- 2005.09.15 8월의 크리스마스
- 2005.03.30 아치의 노래, 정태춘 작사작곡 2
글
에그베이컨
1.
맥도날드에서 애그베이컨이란 놈으로 해장을 하고 조계사 앞에서 그를 태워 보낸 후,
나는 오랜 동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왼쪽 뺨에 남아 있는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내내 나는, 사람 없는 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10/5)
2.
참치는 입에서 겉돌았고, 후배는 편안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그가 이미 오래 전에 강을 건넜다는 걸 알았고, 나 역시 /도강/을 감행했다.
인적 없는 밤거리는 차가웠으나, 그의 발걸음은 뜻밖에도 들떠 있었다.
애그베이컨 해장은 두번 째만에 제법 익숙해졌고, 돌아오는 길 내내 읽히지 않는 책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10/12)
3.
하늘공원에서 야경을 볼 수 있는 건 일년 중 열흘 정도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으나 즐거웠고, 날씨는 예상보다 시렸으나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한대수의 갈라진 목소리를 잠시 들었다.
그는 크림트의 그림을 뵈주었고, 나는 콜비츠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아마 절대로 한대수같은 히피가 되지는 못 할 거다.
하지만, 한대수와 콜비츠 사이 그 어디에 크림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10/14)
4.
친구들은 진정으로 즐거워했다. 맥주 맛은 여전히 좋았고, 적당히 소란했다.
그의 당돌함에 친구들은 속수 무책이었고, 나는 즐거웠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닭도리탕이 조금 달았는지 어땠는지도 모르고 히죽거렸던 것 같다. 내내.
벌써 계절이 바뀌려나 아님 깊어 지려나, 비가 내렸다. 하늘이 비치는 우산을 쓰고 걷는다.
투명하고 맑은 그와 함께.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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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사무실, 식민지근대화론, 정치경제학과 구조주의, 홈에버, 생신
1.
과사무실 일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과목 종별이 청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전공으로 수강신청을 한 학생, 이걸 제대로 지도하지 않은 선생, 그리고 청강과목은 전공학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과사무실, 또 과에서 청강과목으로 개설했음에도 전공과목으로 수강신청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대학원 ... 이런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그런데 피해는 학생한테만 돌아가게 생겼다.
문제가 심각하다. 누군가 책임을 지어여 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수강신청을 잘못한 학생도,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선생도, 관련 사실을 공지 하지 않은 과사무실도, 시스템의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대학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맘이 무겁다.
2.
엊저녁 한 방송의 시사프로를 보다가 마음이 답답해졌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에 관한 보도. 그는 뉴라이트쪽 잡지에 소설가 조정래가 아리랑에서 역사를 왜곡했다고 했다. 김제 평야가 일제에 의해 곡창지대로 변했는데도 일본사람들에 의해땅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것만소설에 그리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소설에 그려진 대량학살 장면등도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방송하는 태도는 여전히 철없는 친일 교수의 망동이라는 식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러 제법 단단한 형태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이거대한자본주의적 착취 구조의 토대를 누가 먼저 만들기 시작했느냐고 한다면 일본 식민주의라고 답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근대화의 초석을 누가 놓았느냐고 했을 때는 식민주의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총독부가 벌인 토지조사사업이 조선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듯이 (그건 도대체가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일사불란한 동원체제를 만들고 여기에 편승해 이병철과 정주영이 투자와 투기를 분간할 수 없는, 독점과 경쟁의 구별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한 것 역시 조선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총독부와 박정희 전두환이, 그리고 삼성과 현대가만들어 낸 것은 (합리적 혹은 비상식적) 착취구조이다.
안병직, 이영훈 교수를 위시한... (김철 선생을 포함한) 일군의 연구자들이 제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민족주의에 과학과 역사와 정치가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흐물흐물 문들어지는 우리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민족주의와 싸우듯이, 착취구조와 싸울 수는 없는가 하는 점이다. 과학과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삶을 문드러지게 하는데에는,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는 민족주의보다, 신자유주의가 더 큰 공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도 문화예술계도 운동도 여가도 공부도 모두 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 안에서만 나름의 의미/가치를 부여받을 수가 있다. 교환가치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3.
나는 정치경제학을 읽으며, 그리고 소쉬르를 읽으며 가치의 문제에서 전율한다.
아담스미스와 리카르도와 달리 맑스는 가치를 노동에서 찾지 않고 교환에서 찾았다. 자본주의의 (상품의) 가치는 노동이 아니라 교환을 통해서만이 인정된다.구조주의에 있어 의미는 지시대상이 아니라, 언어적 단위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그렇다면 우리가 <자본>을 자본주의에 비판으로 읽듯, <일반언어학강의>를 근대적 언어 인식에 대한 비판이론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걸 깨달을 수있었다는 것은 맑스도 소쉬르도 아직 완전한 근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그 경계에 있었기에 더 예민했을 것.
4.
홈에버라는 대형할인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소위 비정규직보호법안의 시행일에 맞추어 파업을 '감행'했다고 한다.
5.
화요일 어머니 생신이었다. 하여 주말에 동생네가 올라왔다.
200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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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화요일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와 맥주를 한잔 했다. 지도교수 흉을 한참 보다가, 또 그이에 대한 서글픈 변호를 서로에게 나누었다. 그 친구나나나 그이가 없으면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고 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전혀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거나. 맥주는 배가 불렀고, 훈제맛이라던 닭은 기름냄새가 역했다. 그래도 수업 끝내고 그것도 같은 처지에서 지도교수 흉을 봐가며 술을 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 행복이다. 그럴 수 있는 이들이 제법 많던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수요일
베트남에서 온,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선배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했다. 외국인이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 그도 한국인 친구는 처음이라고 한다. 삼겹살은 달았고 쏘주는 입에 붙었다. 나만큼이나 시골틱하게 생긴 그는 나와 동갑이다. 갑 친구를 대학원에서 만난 건 참으로 오랫만이다. 둘이 술을 먹다 하나가 졸면 나머지 하나는 황당하다. 내가 그를 황당하게 했다. 다음날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우린 친구니까 괜찮소.
목요일
점심. 일본에서 온 친구와 중국에서 온 친구와 교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은 한없이 늦었고, 우리의 얘기는 한없이 이어졌다. 그 둘은 나보다 많이 어리지만, 그래서 나한테 존대를 하지만, 하나는 나의 선배고 하나는 한참이나 후배지만,나를 거침없이 놀려 먹는 내친구들이다. 인문관 앞에서 자지러지던 그들의 웃음만큼이나 나도 들떴다.
저녁. 한 칠년 전쯤 부천의 논술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한 놈은 나를 형이라고 불렀고, 다른 한 놈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 친구들은 당시의 내 나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이었고 그들은학부를 이제야 막 졸업했거나 심지어 아직 졸업도 못한 상태다. 대학을 입학한 지 7년이나 되었자만. 군대도 아직 안갔다 왔는데 말이다. 한 놈은 사회대 학생회장을 하고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돕다가 이제 좀 한가해졌다고 한다. 9학긴데 이제 곧 졸업이란다. 또 한 놈도 역시 운동을 하다가 다 늦게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2월 시험은 제법 봤단다. 한 놈은 부천에서 지역 운동을 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을 친구로 둔 게.
금요일.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동기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어찌나 울분을 토해 놓던지, 나도 왈칵 성을 냈다. 버스를 태워 보내고는 조금 씁쓸해졌다.내 삶도 잘 추스르지 못하면서 어째 오지랖 넓게 넘의 일에서 허우적거리는가. 내코가 석잔데. 그를 만났을 때의 설렘도 그가 타고 떠난 버스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술없이 먹은 갈비찜은 달기만 했고,비싸기까지 했다. 당장 생활비가 없고, 언제까지 내가 앞을 볼 수 있을지도알 수 없는데. 의사가 절대 입에 대지 말라는 담배는 술만 먹으면 뻐끔거리고 있다. 내 두 눈은그야말로 내가 꼴보기 실을거다.필경 버스 에서 보냈을 문자에서 동기는 나를 앞으로 오빠라 부르겠다고 너스레를 떤다.조금 생뚱맞기는 했지만, 마음이 다시 달떴다.
월요일. 토요일.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 양반과 저녁을 먹었다. 하루는 회를 떠다가 소주를 먹었고 하루는 갈비탕을 앞에 놓고 맥주를 먹었다. 엄니는 술을 거의 안 하신다. 아들이 혼자 먹을 수 없으니 기꺼이 반 잔을 받아 놓으실 뿐. 엄니는 나에게 온갖 푸념을 늘어 놓으신다. 말동무라고는 나밖에 없다. 직장도 다니시고 교회 활동도 열심이시지만,'괴팍한' 어머니는 나말고 친구가 없으신 것 같다.묵묵히 듣던 나는 엄한 소리를 한다. 엄니, 진지는 자셨슈?
내 친구들은 다 어니로 갔는가.
어떤놈은 남해 농협에서 돈다발을 세고 있고,어느 놈은 정치를 공부한답시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고, 또 한 놈은 영국에 가더니 영 무소식이다.다른 하나는 학교 뒷산에 뿌려졌고. (물론 이이는 나보다 선배지만, 이제 내가 그가 산 삶보다 더 많이 살았으므로 감히 친구라 부르겠다. 그가 들으면 헛웃음을바람빠지듯 흘리며 내 뒷통수를 야무지게 갈기겠지만.)
내 친구들은 어디에도 있다.
학교에도 집에도 신촌의 거리에도 영국에도 일본에도 미국에도 중국에도 프랑스에도....아 그리고 아마 대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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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학기가 또 하나 갔다.
다시 시작하고 두 번째 학기였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학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보고서도 다 내고, 방학을 맞아, 신년이 되었는데도 도무지 정신이 없고,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다.
무어라도 읽지 않고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닥치는 대로 읽어보지만, 그것도 금방 시들해지고 다시 벙렁 나자빠진다.
조교장을 하기로 했다.
며칠전부터 출근을 하기는 했는데, 갈피를 못잡고 있다.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꽤 오랜 동안 망년회를 하던 고등학교 동기녀석들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왁자한 곳에서 허허실실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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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회 참관 후기
유독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었던 4박5일이었다. 횟수가 잦았던 것은 맛좋은 일본 맥주 때문이었고, 시간이 길었던 것은 거기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진귀한 문명의 이기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서 달리 보이고 느껴졌던 것은 맥주와 화장실뿐만이 아니었다. 학회 문화, 학교 편제나 제도, 도서관 시설 등등 나를 낯설게 하고 또 부러움 혹은 부끄러움에 ‘몸서리치게’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가 있었던 발견은, 한국어학과 한국어 교육은 한국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때의 한국어는 ‘국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게는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이런 점들을 일반론적 차원에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민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된 이러저러한 일정은 차분하게 학회 발표나 견학 내용을 되돌아볼 수 없게 했다. 또한 단기간이라도 일본어 관련 학습을 하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발표회의 내용을 고려해서 참가자를 선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반성도 해 본다.
조선학회에서
도시샤 대학에서 고영진 센세와 함께...
도시샤대학의 정지용 시비에서
이번 일정중 유일했던 비학술행사, 금각사 관람
모든 일정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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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1.
10월의 목련이라니...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게지
맥주에 오뎅이라니... 이리도 어울리지 않는 짝이
그이의 표정은 생각보다 단호했고
나는 아득했다.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파고 들었고
아찔했다
그리고 뜻밖에 상황은 분명해졌다
2.
멀어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며는
떨어지는 눈물 참을 수가 없다고
그냥 돌아서서 외면하는 그대의 초라한 어깨가 슬퍼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인사에 나의 눈에 고인 눈물 방울 흐르고
그대 돌아서서 외면하고 있지만 흐르는 눈물을 알아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가
헤이 한번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나 이렇게 애원하잖아
헤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와봐 그대의 숨결 들리지 않아 마지막 한 번만 더 그대의 가슴에 안기고 싶어
3.
남해 금산식의 사랑은 이제 졸업했다는 투로
짐짓 어른인 체 했지만,
착각이었나 보다
감정 노름을 한껏하고 있었다 나는.
삼류 신파는 막이 내려지자마자, 눈물이 다 마르기도 전에, 토악질이 난다
그러나 별것 아니다. 토악질 한번이면 다시 생각나지도 않는 게 신파니까
그의 단호한 입술을 훔쳐 보면서 나는 알았다
게다가 이 신파는 이쪽 혼자만의 것이었음을.
4.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느껴도
헤어져야 하는 사랑인 줄 몰랐어
그대 돌아서서 외면하는 이유를 말하여 줄 수는 없나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가
헤이 한번 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나 이렇게 애원하잖아
헤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 와봐 그대의 숨결 들리지 않아 마지막 한 번만 더 그대의 곁에 잠이 들고 싶어
헤이 한번 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나 이렇게 애원하잖아
5.
목련이 터지는 4월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찬바람과 오뎅과 뎁힌 정종의 맛을 아는 이였으면 달랐을까
이제 이 유치한 신파를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때다.
끝까지 밀고 나가기에는 그러나 내 감정이 너무 피곤하다.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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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일대 서원답사 여행 .... 후기
1.
무의식 하면 대개 머릿속과 관련된 무엇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장 강력하고 의미심장한 것은 몸에 새겨진 무의식이리라. 예컨대 두 발과 두 손이, 그러니까 사지가 모두 따로따로 (질서 있게) 허우적거려야 되는 운전이야말로, 신체에 새겨진 무의식이 얼마나 '食怯'할 만한 것인지 알게 한다. 왼손으로는 핸들을 우로 돌리면서 왼발은 클러치를 밟고, 동시에 엑셀에서 오른발을 거두고, 그러는 사이 오른손은 기어를 중립으로 가져갔다가 다시 3단으로.... 능숙한 운전자는 이런 동작들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그저 몸에 새겨진 '무의식의 흐름'이 운전이라는 몸짓을 완성해 갈 뿐.
2.
버스에 오르면서 털어넣기 시작한 소주가 연수기간 내내 몸속에서 돌돌돌 소리를 내며 굴러다녀 종국에는 한쪽 귀를 땅에 대고 깨금발을 뛰면, 혹 팔을 세차게 흔들어대면 그 끝에서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한 뭔가가, 흐흐흐 기분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뽁뽁’ 하고 나올 것 같았다, 고 하면 자발없는 자랑이 될까 아니면 말라비틀어진 반성이 되는 걸까.
하지만, 술이 아니고도 내 몸에는 2박3일 연수의 일정이 차곡차곡 새겨져 있다. 슬쩍 밀쳐내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내 발바닥을 꽉꽉 눌러주던 새재의 길, 콧구멍과 귓구멍을 시원스레 무시로 드나들던 그 한적한 길을 걷다가 우리는 ‘가을, 다시 이 길을 걷자’고 약속하고야 말았다. 그날 저녁 원장님의 여헌 선생 관련 말씀은 피 안 통해 저릿저릿해진 종아리에 담아 두었고, 다음날 쉼 없이 ‘너므 조상’한테 절하면서는 무르팍으로다가 ‘우리 엄니한텐 은지 절해보고 안 혔나’ 곰곰 생각했다.
어둠이 깔린 동락서원 대청에서 퍼지고 앉아 폭폭한 감자를 먹으며는 장수방 선생님만의 멋스러움을 목구멍으로 되새김질했고, 2학년 총무님의 발표 내내 시린 엉덩이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덧 이야기는, 여헌의 도통설이 정치적 타협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거쳐 근기 남인의 연원으로까지 흘러들고 있었다. 허나 뭐니 뭐니 해도 (내) 연수의 백미는 둘째 날 밤 구미대교 아래에서의 술자리.
3학년, 2학년 총무님들의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던 노랫가락은 자꾸만자꾸만 손바닥에 와서 부닥쳐 ‘짝짝’ 소리를 냈고, 김세봉 선생님의 동음이의어 유머는 내 머리통을 쨍쨍 울릴 정도로 시원(혹은 썰렁)했으며, 7기 백범영 선생님의 율동을 곁들인 개구리송은 초고도근시인 내 눈알을 황급히 주어 담아야 할 정도로 기괴한(? 혹은, 숭악한) 것이었다. 여기에 김결 선생의 개똥벌레가 가슴을 짠하게 하니, 나 역시 음정박자가사 모두 ‘저그 저짝’으로 팽개치고 고성방가에 동참할 밖에....
3.
이렇듯 2박3일 연수는 내 발바닥에, 귓구멍과 콧구멍에, 종아리와 무르팍에, 목구멍과 엉덩이에, 손바닥과 머리통과 눈알에, 그리고 내 가슴에, 은근히 새겨져 있다. 어느 날 꿈에 진하게 화장하고 예고 없이 나타나는 무의식처럼, 내 몸에 박힌 하계 연수는 아마도 한동안 불쑥불쑥 내 몸 곳곳에서 스멀스멀 솟아 나오리라.
내가 일주일에 두어 번 유도회에 나가며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 역시, 한문 해득력을 높인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이 아니라, 내 몸에 무언가를 자꾸만 새겨 넣는 일일 터. 그래서 무섭고 겁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몸을 비틀고 웅크리고 벌렁 나자빠지고 그러다 보면, 나만의 무늬가 만들어질 테고, 그러면 혹 이름값 할는지도 모르지....
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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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수
어머니와 무악산엘 다녀왔다.
힘들어 하셔서 팔각정까지도 못가고 봉원사, 청송대로 해서 내려 왔다. 일이 많이 힘드신 모양이다.
청송대 한열비 동주시비 골고다 언덕... 도토리가 정신없이 떨어지는 요즘이다.
어머니와 나는 청송대에 앉아서 그야말로 꿀밤을 맞으며 졸았다.
고개를 떨구고 다낡아빠진 벤치에 앉아 졸고 계시는 어머니를,
곁눈질로 보았다.
집에 돌아와 만져본 어머니의 어깨는 많이 여위어 있었다.
(http://kr.blog.yahoo.com/log0124/archive/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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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1.
사자자리가 아니냐고, 8월생이 아니냐고 물었다.
30대냐고 했고 20대 후반이라고 대답하자, 에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 보니 30대구나 했다.
결혼은 했냐고 물었고 애가 둘이라고 하자, 옷 입고 다니는 거 보면 다 안다며 거짓말 하지 말라 했다.
2.
팔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에 관한 영화다. 죽음을 준비하는 어떤 방법...
주인공 정환과 똑같이 미혼의 30대이자 사자자리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떻게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가.
추억 말고, 내가 가지고 갈 '현재'는 무엇인가.
3.
박하사탕, 파이란, 팔월의 크리스마스 ... 모두 아픈 영화들이다. 모두가 아픈 시절에 나를 더 시리게 했던 영화들이다.
그런데 팔월의 크리스마스가 다른 두 영화와 다른 점은 배우나 감독의 힘이 영화를 압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석규도 심은하도 모두 저만치 물러나 있다. 정환과 다림 뒤로. 요란한 영화적 트릭도 없다.
4.
케이블에서 해주는 팔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연신 눈가를 훔쳤다.
속이 허해졌다.
이제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야 할 것 같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어야 할 것 같다.
5,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진다.
런던의 친구가 그즘 혹 들어올지도 모른단다.
왠지 올 겨울은 스물일곱 이래로 버둥거리고 있는 내 서늘한 나날들이 미지근하게나마 데워질 것 같은 느낌이다.
가당찮게도....
8월의 크리스마스는 차가울까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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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작사작곡
1.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프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자그만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가끔
한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피거나 깜박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한 막대기 정 가운데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또가끔
기털을 고르고 부리를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 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돌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마 날지마 그건 자학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 없지만 가끔 화장실의
폭포수 소리 어쩌다 창밖 오스트레일리아 초원 굵은 빗소리에
환희의 노래처럼 또는 신음처럼 그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내게 말한다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빙빙돌고
내일 아침도 그는 나와 함께 조간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를 그도 잘 알것이다
우린 서로 살가운 아침인사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가족 누군가
새장 옆에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아치의 노래는 ...
2.
2002년 봄, 정태춘과 노찾사가 연대 노천에서 공연을 했다.
정치색이 있었고, 명계남이 설레바리를 치고 다녔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자리였다.
얼마 후 게서 들은 정태춘의 노래가 음반으로 나왔다고 해서 씨디를 샀다.
그리고 한참 후(뭔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어느어느 자리에서 나는,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음악이라며, 주책을 떨었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치'는 연예시스템에 결박당한 철부지 가수이고 '나'는 연예자본이라고. 그러나 곧 '아치'가 정태춘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아치'와 '나'는 분열되었으되나뉘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며 또한 이 노래를 듣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기도 하(며 이 글을 읽는 당신이기도 하)다.
새장 속에 갖힌 아치/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똥을 치우고 사료를 준다.
날려고 애쓰지 말라고 그건 자학일 뿐이라고 그리고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라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도 모두 '나'이고 '아치'이다.
3.
내 삶의 백터는 종종 밖으로 향하곤 했지만, 그래서 울타리를 넘어 갈듯 주춤거리고 웅성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안으로 수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내 아침마다 가라앉았고, 또 오래 혼자였다.
내 노래 역시 새장 주위로만 빙빙 돌기가 쉽겠지만, 또 그것이 헛된 이념이고 나를 깊이 상처낼 뿐이라 할지라도 나,
아치가 되련다.
때때론 양아치라고도 불리는
4.
이 유쾌한(?) 선은 한편으로는 2003년 8월의 어느 비 오던 밤에 '예정에도 없이' 올라 탄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1999년 봄, 도서관 4층 창가에서 외친 딴스홀을 허하라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2002년 4월, '언어가 왜 의사소통의 도구냐'라는 이연숙 선생의 도발적 질문으로 이어진 그 선은 2004년 가을 북한산의 어느 능선에서 생뚱맞게도 '언어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근대적 관념에 포섭된 문제 설정이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5.
내 욕망의 흐름들은, 그 우발적이고 불퉁거리는 가닥들은 지금 숨을 고르고 있다.
알튀세의 우울한 눈빛이 그날 내리던 비와 포개진다.
우발적 유물론을 위하여.
무한한 자기언급, 그 모순의 언어학을 위하여.
pou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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