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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01 `전인미답`의 길, 이른바 ‘인문언어’에 대한 잡감
- 2010.10.20 월정사_내원암_백담사
- 2009.07.20 이 냉동고를 열어라 1
- 2009.05.26 노무현 ‘서거’ 유감
- 2009.04.12 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 2009.03.24 `용산’은 묻는다-왜?
- 2009.01.13 미네르바의 올빼미
- 2008.11.20 클래식
- 2008.02.03 피도 눈물도 없이
- 2008.01.26 갑시다
글
`전인미답`의 길, 이른바 ‘인문언어’에 대한 잡감
1.
최근 ‘특임’ 장관으로 임명된 모 의원의 그 ‘특별한 임무’가 무엇인지, 그것은 아마도 그와 그를 임명한 임명권자만이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특임’ 중 하나가 개헌이란다. 개헌은 헌법의 일부를 고치는 일이다. 전임 대통령 때에도 권력 구조 개편과 관련하여 개헌 논란이 있었는데, 그때와 같은 소위 ‘원포인트’ 개헌이냐 아니면 차제에 ‘87년 체제’ 자체를 손질하는 수준의 개헌이냐 하는 것 등이 아마도 이번 역시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대대적으로 손을 본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이것은 개헌이지, 제헌은 아니다. 기존에 있던 헙법적 질서를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라든가, 시장경제라든가, 대의제라든가 하는 점은 아마도 전혀 문제시 되지 않을 것이다. 80년대 중반 학생 운동권의 한 분파 중 ‘제헌의회파’가 있었거니와, 이때의 ‘제헌’이란 것은 삶의 방법과 태도를 결정짓는 모든 사회 시스템을 새로이 합의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배치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꿈을 뜻한다.
2010년 7월 2일(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 장기원 국제회의실에서는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HK 사업단의 주체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복합지식 창출을 위한 인문 자료 구축과 활용의 제 문제”가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였다. 이것만 놓고 보아서는 학술대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복합지식”이나 “인문자료”와 같은 새로운 ‘개념어’들이 나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김하수 원장의 개회사는 자못 의미심장하고 심지어 비장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이번 학술대회를 기점으로 언어정보연구원은 ‘인문언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전인미답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전철(前轍)’을 밟아나가고, 지난날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정보연구원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앞에는 아무 길도 안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온 뒤쪽에는 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2.
사실 언어학은 그동안 인문학과 소원했다. 인간의 언어를 다루는 학문이 인문적이지 않았다는 말이 매우 이상스레 들릴 수도 있지만, “음 법칙에 예외 없음”이라는 테제로 근대언어학을 연 소장문법학파 이래로 언어학은 인간을 배재해 왔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어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러한 언어 외적 요소와 무관한 언어의 내적 법칙이었다.
예컨대 소쉬르는 그의 ‘일반언어학강의’에서 실제 발화와 관련되는 파롤적인 것을 (일반)언어학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무진 노력하고 있다. 그가 언어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발화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추상적인 수준의 체계(system), 즉 랑그였다. 이 랑그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계급적인, 성적인, 지역적인 변이들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규칙, 즉 언어의 내적 법칙인 것이다. 따라서 언어학은 그리고 그 언어학이 다루는 대상인 언어는, 처음부터 ‘인간의 무늬’[人文]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인간의 무늬’가 제거된 순수 언어만이 논의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문언어학”이라니! 근대 언어학의 기본 토대를 꼼꼼히 따져 본다면 이 말은 분명 형용 모순에 가깝다. 언어학이라는 근대적 학문을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작업이 바로 언어 외적인 것, 언어에 들러붙은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면, ‘인문언어학’은 오히려 언어와 뒤섞여 있던 지저분하고 통제 불능의 그 무엇인가들을 다시 꺼내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하수 원장의 ‘전인미답’이란 표현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눈앞에는 어떠한 길도 없다. 뿐만 아니라, 출입금지의 팻말까지 걸려 있다. 근대 언어학이 금지의 영역으로 금줄을 쳐놨던 곳, 거기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상식처럼 통용되던 각종 개념이나 방법론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담론을 생산, 유포하던 각종 물질적 장치, 특히 대학 제도와 갈등을 잃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소장문법학파가 그들의 선배인 문헌학과의 대결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학문적 태도와 방법 및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배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유하자면, 개헌이 아니라, 제헌적 상황인 것이다.
3.
물론 언어정보원의 이러한 포부가 어느 정도까지 실현될는지는 알 수 없다. 이날 학술대회의 발표들에서도 ‘전인미답’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겠다는 것인지 그 계획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 치중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한국어교육학 연구의 최신 동향 및 전망”(강현화, 연세대), “사회언어학과 담화 연구 방법론의 이해”(박용한, 해군사관학교), “구어와 문어 문법 연구의 현황과 전망”(장경현, 서울대) 등은 모두 기존의 언어학 테두리에서 다루어지던 것들의 정리이다. “풍속 문화론적 개념어 연구의 현황과 과제”(김지영, 한림대), “개량적 텍스트 분석의 현황과 과제”(이재윤, 경기대) 정도가 기존의 언어 연구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제 첫걸음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에서의 첫걸음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인문언어학’이라는 구호가, 단지 국가의 눈먼 돈을 노린 하고 많은 프로젝트의 보고서 제목으로 남을지, 아니면 김하수 원장이 지난 <한국어+> 4호의 ‘여는말’에서 언급한 ‘잃어버린 가치’를 찾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는지는 향후 10년간 지속될 언어정보연구원의 여러 연구 성과를 통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웹진 <한국어+>5호
http://web.yonsei.ac.kr/ilis/webzine/ebook_05/ebook1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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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_내원암_백담사
1.
오대산 月精寺의 전나무 숲은 듣던 대로 호젓했고
단풍은 뜻밖에도 붉었다.
서늘한 나무 냄새에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경내는 요란했고
茶器를 앞에 두고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옷고름은 지쳐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과 차에 치여 힘겨웠으니,
차라리 횡계의 양떼목장이 고요했다. (10/17)
2.
흔들바위를 향해 묵묵히 걷기를 1시간,
그 바로 아래에 있는 內院庵에 닿았다.
예정에도 없던 이 길은,
케이블카를 세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고,
뱃속에 200그램의 아이를 품은 아내가 예서 지쳤기 때문이었다.
넓은 마당은 물이 고여 고요했고, 붉은 설악의 산세가 내려와 평온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과 차에 치여 힘겨웠으나,
마침내 설악의 안쪽을 만져 본 것 같아설렜다. (10/18)
3.
미시령 새 길을 빠져 나오자마자,
하마터면 노칠 뻔한 용대리 백담사길로 접어들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과 차에 치여 이제는 속절없이 그 속에 섞여들 무렵
백 번째 못을 건너
만해를 만났다.
38살 겨울 그는 무슨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눈 속의 복사꽃은 어쩌자고 펄펄 날렸던 것일까.
丁巳 十二月三日 夜十時頃 坐禪中 忽聞風打墜物聲 疑情頓釋 仍得一詩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飛
‘소 찾는 아이’를 좇느라 둘레를뱅그르 돌았던
極樂寶殿의 편액이
전두환의 글씨라는 사실을 서울에 와서야 알고
아연실색했다.
만해와 일해, 이건 또 무슨 因緣인가.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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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열어라
송경동
(앞 부분 줄임)
150일째 다섯구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전진하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냉동고을 열어라
이 냉동고에는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가 볼모로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정당한 분노가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녹색평론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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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유감
1.
'殺'. '죽일 살'이다. 그러나 왕을 죽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는 '시'로 읽는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라고 하지 않고 '시해'라고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따라서 이런 투는시대착오적인 어법이다.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폐하 밑에 전하, 전하 밑에 합하, 그 밑에가 각하란다. 더없이 봉건적 어법이다.)
‘노 전 대통령 사망’에서 ‘서거’로 바뀌는 순간, ‘서거’ 역시 그런 봉건적 유습인가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그냥 높임말이란다. 따라서 이 말법에는 유감이 없다. 물론 누구의 죽음은 높이고 누구의 죽음은 그러지 않는가, 잠깐 서글펐으나, 문제는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낮추는 데 있는 것.
2.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1년 반 전 모두가 노무현을 욕했다. 노무현을 욕하는 것이 마치 유행인 듯. 또는 그래야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앞을 다투어 그를 조롱하고 놀려먹었다. 그리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 소동의 절정은, 맙소사! 이명박의 당선이었다. 경쟁적으로 노무현에게 돌팔매질 하던 상황이 정상이 아니었듯,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온 나라가 울부짖는 지금의 상황 역시 상식적인 모양은 아니다.
3.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직후 나는 거실 티브이에서 그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검사와의 대화에서이고, 또 한 번은 오일팔 기념식에서였다.
그는 검사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이야기했듯, 변형된 기자회견에 불과했다.'노무현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오일팔 기념식에서 그는 아주 늦게 나타났다. 한총련 및 광주지역의 몇몇 단체에서 그의 출입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만난 부시로부터 ‘이지맨’ 소리를 듣고 막 귀국하던 참이었다. 한총련은 그 당시 이적단체 규정이 철회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아, 이 상황에 나설 곳은 한총련밖에 없는가, 서글펐다. 93년 한총련 출범 이후 처음으로 그들에게 미안했고, 그들이 대견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들의 행위를 난동이라 표현했다. 혹시 그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혹시 80년 광주와 미국의 문제를 몰랐던 걸까? 설마.
4.
그 뒤로 이어진 파병, 비정규직법, 한미에프티에이 등은 그가 진보적 가치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이 사회에 형성된 주류의 카르텔을 깨고, 그 균열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청껏 외치다 갔다. 우리의 주류 엘리트 사회가 얼마나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는지를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남은 것은 그의 스타일뿐이다. 그를 욕한 사람들도 대부분 그것에 치를 떨었고, 그를 따랐던 이들도 대부분 그것에 매달렸다. 떨어질 줄 알면서 부산에? 그건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소리다. 몸소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그가 부산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던들, 시장이 되었던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대통령이 되어서도 못했던 일을 국회의원이나 시장으로서 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이 되어서 지역주의를 깬다고 했던 여러 가지 정치공학적 짓거리들은 지금 생각해도 욕지기가 치민다) 당선 그 자체가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5.
노무현이 무비스타인가?
지금 우리가, 그에게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던 우리가 지금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비운의 무비스타처럼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하염없이 우는 일일까?
노무현적 가치, 만약에 그런 것이 있었더라면, 그에게 그것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를 지지했던 이들이 분명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길은, 아마도 이명박 시대에 ‘서거’한 예컨대, 용산의 철거민들과 화물연대 조합원의 죽음에 과연 참여정부는책임이 없는지 고심하는 일이 아닐까. 다시 말해 구조화된 야만과 억압의 원인이 진정 어디에 있고(오로지 이명박 때문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명박만 욕하면 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으로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추모하는 일이 아닐까.
마치 이명박이 노무현에 대한 공분으로 간단히 대통령이 되었듯,
이명박에 대한 공분을 타고 간단히 노무현을 복권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권되는 노무현은 ‘역시’ 실체 없는,
이미지와 스타일만 허전하게 흩날리는 노무현일 뿐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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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은 묻는다-왜?
한겨레신문 2009.3.24. [야!한국사회] 박수정 르포작가
지난 토요일 밤, 서울에 비가 왔다. 비보다 먼저 ‘용산’은 눈물로 젖었다.
불에 타 죽은 여섯 원혼을 달래는 ‘진오귀굿’(황해도굿보존회 ‘한뜻계’의 공연)이 열린 자리.
만신들과 유가족들, 그 자리에 함께한 시민들이 울었다. 낮 12시에 시작한 굿은 중간에 추모 문화제를 한 뒤 다시 이어졌다.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했으면, 내치지 않고 구하려고 했으면 ….
산 목숨을 잃은 넋들이 어찌 억울하고 분하지 않겠는가.
굿을 하는 동안 만신들이 쓰러지고, 가족들은 까무러치곤 했다.
아무리 통곡한들 원통이 풀릴까만, 추모하려 모여도 불법이라며 광장을 막고 잡아들이는 정부에, 사과는커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폭행하고 영정을 깨부수며 가난한 국민 따위는 없는 셈 치는 이 정부에 내내 상처 입은 마음들이 만신들한테서 위로받기를 나는 바랐다.
철거를 앞둔 텅 빈 집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 아들을 달래주는 만신들이 고마웠다.
죽은 남편들이 “명예회복이 될 때까지 절대로 시간과 세월에 굴하지 않겠다”는 아내들을 꼭 안고 함께 울어주는 만신들이 살아 있는 바리데기처럼 보였다.
빗방울은 무장 굵어지고 굿은 예정한 시간을 넘겨 밤 9시쯤에야 끝났다.
살인 진압이었는데도 모든 죄는 철거민들에게 씌워진 채 시간은 멈춘 걸까.
아니, 그날을 잊지 않는 한 진실은 묻히지 않을 게다. 굿이 죽은 자와 남은 자들을 보듬은 것처럼, 화가들은 그림으로, 가수들은 노래로, 시인들은 시로, 배우들은 연극으로, 작가들은 곧 나올 철거민들의 삶을 기록한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으로 그렇게 ‘용산’으로 지금 움직인다.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유가족·시민들과 함께하려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가족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왜’가 유독 많다.
“망루에서 내려와 다친 사람을 깨워 살린 사람들이 왜 불타는 망루로 갔다고 하는가. 불이 활활 타는 망루에서 죽었다고 경찰이 발표했는데 유품 중에 왜 라이터 두 개는 안 탔는가. 왜 장갑은 안 탔는가. 자동차 열쇠 손잡이 플라스틱 부분은 왜 안 탔는가. 왜 용산경찰서와 구청에서 온 공문은 전혀 타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빨리 부검을 했나. 한 사람을 부검하려면 두 시간도 모자란다는데 어떻게 다섯 사람을 두 시간 만에 했나. 왜 모든 시신을 완전히 난도질해 놨나. 경찰은 왜 추모제에 간 유가족을 그렇게 때리는가. 그건 왜 보도가 안 되는가. 왜 경찰은 병원을 오가는 유가족을 막나. 왜 경찰도 정부도 진상규명하려는 유가족 마음을 못 헤아리나. 우리가 왜 불법인가.”
저 ‘왜?’에 답하지 않고 정부는 힘없는 자를 향해 불법·폭력이라는 말을 자꾸 한다.
추모제도 불법, 참석하는 이도 불법, 깃발을 달 깃대도 불법 무기라고 사복경찰이 길을 막고 협박한다.
‘불법’이라는 단정 아래 불법 아닌 게 없는 세상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불법·폭력을 되뇌는 정부가 의심스럽다.
참사 건물 3층 벽 간판에는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세상을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 실상 불법과 폭력 그 자체가 아닐까.
용산 4구역 철거민 한 여성이 말한 것처럼 “전경들이 왜 여기서 24시간 지키고 있겠어요. 두려워 그러는 거 아니에요? 무섭고 겁나고 두려우니까.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런 건 아닐까. 얼마 전 아랫녘 예순 넘은 여성 농민한테서 얻어온 말인데 이 정부가 알아들으려나.
“남 죽이고 내가 사는 방법은 없다. 남을 살리면 나도 산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자기가 죽는다.”
===============================================
오늘 아침 똥을 누다가 불끈 화가 났다.
더블유비시 야구를 어찌 볼까 고민하는 내게.
용산 철거민들을 살인진압한, 바로 그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시내를 유유히 빠져나가던추기경의 운구차량.
그 당당한 행렬을 바라 보며 아연실색했던마음을
어느 르뽀 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부르짖을 티브이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나,
대통령의 조사와 경찰의 호위 속에 자신의 삶을 마감한 추기경이나....
공연히 우울한 요즘.
공연히 주위에 신경질이다.
찬 날에 핀, 개나리와 진달래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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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올빼미
1.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나 날아오른다.
그리하여 온갖 흔적들을 살펴보고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혜의 여신에게 일러준다. 필경 그 큰 눈을 꿈벅이며...
헤겔은 자신이 그 올빼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로이센을 절대정신의 궁극적 현현이라고 보았으니.
역사의 흔적을 보고그 법칙을 읽을 수 있는 자, 바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면에서 맑스는 헤겔의 충실한 후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보다 더 늦게 날아오른. (물론'갈리아의 수탉'을 이야기했던 맑스이지만 - 아마도미네르바의 올빼미 운운에어깃장을 놓고 싶었겠지- 그가 스스로를 '수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수탉'은 '갈리아'의 프롤레타리아트였고 그는 그 흔적을 살피고 해석하는 자였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날개짓에 사방이 휘청하더니, 이내 그를 잡아가두었다.
그가 정말 '그'이냐 하는 소동은 도무지 무의미한 짓거리다.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헤겔만도, 맑스만도 아니듯이, ‘그’만일 수도 없다.
미네르바는 항상 이미 여럿이다.
물론 지금이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야 하는 황혼녘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멘셰비키는 주객관적 요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할 테고,
볼셰비키라면 ‘임박한 파국’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팜플렛을 벌써 나눠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의 여신을 지키던 올빼미는 이제,
네트의 바다에서 항상/이미 유영하듯 날아다니며, 그리고 비행하듯 헤엄치며
인간의 흔적(인문)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또 다른 흔적이 되고 있다.
(그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일러 지혜라 할 수 있을 터.)
2.
논문자격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답답해 책을 몇 권 샀다.
<현대과학의 풍경>1, 궁리
<네셔널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 지호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책갈피
100년도 더 전, 5,6년 간격으로 해운법과 측량술, 그리고 수리학을 공부한 조선어 연구자의 이력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고민이기 때문.
<현대과학의 풍경>은 제대로 된 과학사, 과학철학의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근대과학의 성립사를 주제별로 정리했다. 시험 공부 중에 흘낏흘낏 쳐다보니, 장별로 완성도의 차이가 약간씩은 있고, 일정한 관련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서술이긴 하나, 매우 유용할 듯하다. 어느새 6장 '진화론'까지 내달았다.
나머지 두 권은 아직 맛만 본 셈. 도판이 시원시원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과학>은 비교적 평이한 대중서. 고대부터 현대 과학까지 흥미 있는 얘깃거리들을 모아 놓은 듯. <최무영교수의 물리학 강의>는 인문학도를 위한 현대 물리학 강의. 3강 정도 읽었는데, 그 인문적 감각에 고무됐고, 그만큼 기대가 크다.
3.
지난 학기 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네 공부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냐고.
어색한 잠깐,이 지나고 잘 모르겠다고 어물거렸다.
안 됐다는 표정을 남기고 그는 돌아섰지만,
내내 불편했다.
새해가 밝아올 무렵,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국어’ 그것은 국가와, (국가 단위의) 균질적 대중 교육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인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국가와 (국가 단위의) 교육이 공모하여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그 무엇(중의 하나)이다. (아, ‘올바른’ 한국어와 ‘정확한’ 모국어의 감옥이여.) 언어와 국가는 사실 어떠한 관계도 없는 이질적인 것이나, 근대에 들어 서로를 요구하였고, ‘국어’와 ‘민족정신’이라는 쌍생아를 만들어냈다.
만약, <녹색평론>이 이야기하듯, 소농 위주의 사회구성체가 대안이라면,
균질적 프롤레타리아를 국가적 단위로 생산해 내는 대중/보통 교육 체계에 일정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는 그 매개인 ‘국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거꾸로 하나의 언어=민족=국가라는 단일 언어 사회를 그 이상으로 하는 ‘언어적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은 지역적 생활공간의 부활일 터이다.
과학사 책 3권과 더불어 <레닌과 미래의 혁명>(책세상)을 산 이유이다.
지난 시대의 유령, 레닌이 우리에게 무엇이겠는가마는 (갈리아의 프롤레타리아트 모양으로) 황혼녘은커녕 신새벽에 혁명을 꿈꾸었던,
레닌은 여전히 나에게 동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내 공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전망할 수 있는
새로운 추상기계의 일부이고 싶다.
새로운 내용(의 배치)와 조응하는
새로운 표현(의 배치)이고자 한다.
2009. 1. 13. K.B.M.
(새해 소망을 적으려고 시작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내 의도와는 달리, 무척이나 헛헛한 글이 되어 버렸다. 이 허전함을 무슨 수로 채울꼬.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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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출근길.
(사실 등굣길이다. 그런데 등굣길은 아이들이나 걷는 것이라는 유치한 생각이 내 손을 잡아 끈다. 출근길을 걷자고. 물론 강의를 하러 갈 때도 출근길은 아니다. 출장길이란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원 소속 없는 출장. 나를 고용했다고 "치는" 데는 그런 곳뿐인데 그런 데로 출근하지 않고 출장 간다. 그리고 나를 고용했다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어느 연구실로 나는 출근한다.)
생뚱맞게 칼뵘이 지휘하는 모짜르트를 듣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교향곡 36번이라나 38번이라나...
시디도 되지 않는,
뉴스나,기껏해야 삼김토론 같은 시시껄렁한 농담만 들려 주던 내 차의 라디오는 신이 났다.
텅빈 학교 주차장에서, 소리가 갈라지지 않는 한 볼륨을 크게 높이고 눈을 감았다.
그 앙징맞고 즐거운 리듬의 선들이
내 "기관 있는 신체"로 파고들었다.
얼음처럼 찬 공기도 반갑기만 했다.
연구실 컴퓨터를 켜자마자
알라딘으로 접속.
모짜르트를 검색했다.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지휘자, 연주자의 이름이 떴다.
칼뵘은 거의 품절이었다.
이것저것 클릭해보다가
다니엘 바렘보임 50주년 실황 DVD를 구입했다.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다.
십 년도 전에 베토벤 평전(솔로몬, 윤소영 역)을 읽다가 윤소영이 전한 몇 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클래식도 빵과 한 가지로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우리의 자산이라고.
(역시 윤소영에 따르면, 그 엄청난 파토스에 당환한 레닌이,
베토벤을 더는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던, 바로 그 "열정" 소나타가
반 백의 바렌보임이 자신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며 고른 두 곡 중의 하나다.)
그렇다. 왜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그들에게 빼앗겨야 하는가.
(나도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나 보다.)
집에 들어와 보니 4년 전 샀던 DVD 플레이어는 이미 예전에 고장이 나 있었고, 오디오는 CD만 되지 않는다.
예전에 공연히 젠체하느라고 사놨던 시디들, 길렐스의 피아노 몇 장, 프루트벵글러의 베토벤 9번, 바렌보임의 베토벤 5번 등등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여, 내가 조만간 베토벤이든 모짜르트든들을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또, 우연히 라디오에서 만나지 않는 한.
역시 클래식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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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1.
어릴 적, 아침 잠이 없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새벽녘에 책을 읽을 때가 많았다.
네 식구가 모두 모여 꾸물거리는 작지 않은 방은 이른 새벽부터 밝았고, 아버지는 뭔가를 쓰거나 읽으셨다.
나도 /소년소녀 한국전래동화/나 /소년중앙/ 따위의 읽을 거리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귀찮고 성가시게 그때마다 눈물이 났다.
나중에 읽은 어린이용 과학도서에서는, 그게 눈을 보호하기 위한 신체의 '오묘한' 작용이라고 했다.
눈물은 아침에만 나지 않았다.
네 식구 모두 모여 보던 티비 앞에서도 난 연실 눈을 훔쳤다.
언제부턴가 그게 좀 민구스러운 일이란 걸 깨닫고는, 바짝 다가선 티비 앞에서 슬글슬금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래도 식구들은 눈치를 채고 재밌어 했다. "얘 니네 오빠 또 운다."
2.
언제부턴가 눈물이 나지 않는다.
웬만하면 날 울리던 연속극에다 대고 나, 웬만하면 비아냥과 조소를 날린다.
10년 내의 영화 중 눈물을 흘린 게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 두고 두고 곱씹는 정도다. (팔월의 크리스마스, 박하사탕, 파이란이 그랬다. 최근 /우생순/을 보고 울었다. 임순례의 영화라 해서 유치할 거라는 걱정을 뿌리치고 봤는데, 드라마시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장된 포즈와 음악이 눈에 거슬렸다.)
물론 아침에 뭔가를 읽을 때도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요즘엔,
인공눈물을 넣는다. 처방전 없이는 살 수도 없는 이놈을 나는 항시 지니고 다닌다.
3.
작년 여름 녹내장 판정을 받고,
'혈액순환개선제, 치매치료제'라는 조금은 썰렁한 효능효과를 자랑하는 알약과 안압약을 처방 받았다. 인공눈물은 그 덤이다.
시신경이 주변부부터 죽어가기 시작하여 심해지면 단추구멍을 눈에 대고 보는 것 같이 시야가 좁아지고, 종내 시력을 잃는 녹내장에는 마땅한 약이 없단다. 그 진행 정도를 늦추는 것밖에는.
담배, 커피, 홍차를 절대 금하라는 의사에게 "술은 어떤가요 ?"했던 내가, 암만 생각해도, 우습다.
술은 그리 큰 관계가 없다는 게 당시 의사의 말이었지만, 최근에 들은 바로는 폭음이 녹내장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
술자리를 즐기는 데다가 먹었다 하면 폭음을 일삼는 나로서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술은 담배를 부른다.
4.
새해 계획을 완성했다.
담배 완전히 끊기, 일주일에 한 번 산에 가기, 책읽기에 하루 다섯 시간 확보하기, 논문 두 편 쓰기.
이게 신정 때 세운 계획인데, 이 모든 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술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마련한 세부 지침.
하루 술자리의 주량 제한 - 소주 한병(8잔), 맥주 1000cc
또 이걸 실현하기 위한 행동 지침 - 소주 한 잔을 세 번에 나눠 마시기.
지난 주말에 실행한 바로는 아주 만족스럽다.
5.
녹내장 판정을 받고, 파란 눈이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연히
처음으로 세운 한해 계획,
'피도눈물도 없이'
지켜지기를
빌어본다
2008년. 2월 3일 설 연휴를 앞두고
K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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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그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제.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얘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제.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 있데. 어린 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 보고야, 라디오도 안 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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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을 뒤적이다가, 김명인이 작년 5.18때 썼던 글을, 우연히읽었다.
'그날' - 거기서 얻은시 한편이다.
어느 여고생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은 글이란다.
지금도 누군가 '같이 갑시다'하고 외치는데 우리는 외면하고있는 것은 아니냐는
김명인의 힐난이 여러 겹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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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일주일 다녀왔다.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은 여행이었다.
되돌아오는 날새벽녘에 걸었던 도쿄대학 구내의 스산한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곧 한두줄 끄적거릴 요량이긴 한데 될는지 모르겠다.
2008.1.25.